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 곳곳에서 축제 현수막이 나부낀다. 지방자치단체가 여는 축제만 수천 개에 이른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지역을 알리고 사람을 불러 모으겠다는 취지는 분명 좋다. 그러나 정작 "올해 다녀온 축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축제는 늘었는데 기억에 남는 축제는 줄었다는 뜻이다.
닮은꼴 축제, 사라진 지역성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의 실종이다. 지역 특산물이나 역사적 인물에서 출발했다는 축제가 막상 가 보면 별 차이가 없다. 무대에는 초대 가수가 오르고, 먹거리 장터에는 비슷한 메뉴가 늘어서고, 체험 부스는 어디서 본 듯한 구성이다. 지역의 이야기는 개막식 인사말에만 남고 현장에는 없다. 방문객이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축제는 오래 갈 수 없다.
연예인 섭외와 일회성 행사에 쏠린 예산
예산 구조도 문제다. 예산의 상당 부분이 유명 가수 섭외와 무대·조명 같은 일회성 비용에 쓰이고, 정작 콘텐츠 개발과 사후 관리에는 인색하다. 축제가 끝나면 남는 것은 쓰레기와 정산 서류뿐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지역 상권에 실제로 돈이 돌았는지, 방문객이 재방문했는지 따져 보는 사후 평가는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성과가 검증되지 않으니 이듬해에도 같은 방식이 되풀이된다.
주민 없는 축제, 바가지 논란
주민이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이 된 점도 짚어야 한다. 기획과 운영을 외부 대행사에 맡기고 주민은 동원 대상이 되는 구조에서는 축제에 애정이 쌓일 수 없다. 여기에 바가지요금과 불친절, 주차난 같은 고질적 문제가 겹치면 한 번 찾은 방문객은 다시 오지 않는다. 입소문이 곧 홍보인 시대에 불쾌한 경험 하나는 수백 건의 보도자료를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첫째, 덜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늘려 온 행사를 통폐합하고, 성과가 낮은 축제는 과감히 접어야 한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다. 둘째,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되살려야 한다. 거창한 무대보다 그 고장에서만 맛보고, 걷고, 만들 수 있는 경험이 사람을 부른다. 셋째, 주민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이 즐거워야 방문객도 즐겁다. 넷째,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방문객 수라는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체류 시간, 소비 지출, 재방문 의향, 주민 만족도를 함께 따져 다음 해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축제는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이다
좋은 축제는 사흘 만에 끝나지 않는다. 행사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행사 후에 남는 관계가 있다. 축제 기간에만 반짝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사계절 이어지는 지역의 일상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느냐를 물어야 할 때다. 방문객의 발길이 끊긴 뒤에도 주민의 마음에 남는 축제, 그런 축제가 지역을 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