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 내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올해로 일흔중반의 고개를 넘고 있는 지금, 누군가는 이 나이를 인생의 황혼이라 부르며 정리를 말하지만, 저에게 이 삶은 여전히 매일 새로운 것을 깨닫는 배움터입니다.
돌아보니 제 삶에는 저라는 사람을 빚어내고 키워낸 세 가지 큰 교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식이라는 거울, 삶의 벼랑 끝에서 뒤늦게 만난 신앙, 그리고 이 길을 통과하며 마침내 가슴에 품게 된 ‘사랑’이라는 배움입니다.
1. 삶의 겨움 속에서 나를 비우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다
젊은 날의 저는 참 서툴고 욕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 뒤에는 늘 가난과 삶의 고단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던 그 시절, 내 몸을 빌려 태어난 아이들에게 넉넉히 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불안함이 늘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아이들이 대신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에 내 뜻대로, 내가 그려놓은 지도대로 자라주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일은 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돈은 없고 삶은 무거운데 아이마저 아플 때면, 밤을 지새우며 흘렸던 눈물은 가슴을 찢어놓았습니다. 내 육신과 마음이 다 바스러질 것 같던 그 고단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가르치고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내 안의 날 선 모퉁이를 깎아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 뒤에서 걸어주던 시간들 속에서 저는 비로소 삶의 무게를 견디는 '진짜 어른'이 되어갔습니다. 품 안의 작은 생명이 스스로 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묵묵한 기다림이자 축복임을 배웠습니다.
2. 뒤늦게 찾아온 위로와 보이지 않는 손
부끄럽게도 저는 처음부터 신앙을 가졌던 사람은 아닙니다. 젊은 날에는 내 힘과 의지만으로 그 고단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매서운 폭풍우 속에서 홀로 버티다 결국 무릎이 꺾이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신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늦은 길목에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손을 붙잡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꿇은 무릎이었기에 제 기도는 더욱 간절했고, 그만큼 깊었습니다. "왜 이제야 오게 하셨느냐"고 묻기보다, 늦게나마 찾아온 이 평안에 감사할 뿐입니다. 신앙은 저에게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요람이 되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흘렸던 눈물과 고통마저도, 돌이켜보니 저를 더 단단하고 둥글게 만들기 위한 거대한 손길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3.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넉넉함
"인생의 가을날에 비로소 열리는 가장 탐스러운 열매는 '사랑'입니다."
돈 없던 시절의 서러움을 자식을 기르며 이겨내고, 늦깎이 신앙을 통해 내 삶을 온전히 내맡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아프고 고단했던 두 가지 길 끝에서 마침내 '사랑'을 만났습니다.
제가 배운 사랑은 젊은 날의 뜨거운 불꽃 같은 감정이 아닙니다. 모진 풍파를 다 겪어낸 후, 상대방의 허물이 보일 때 가만히 덮어주고, 쓸쓸한 어깨를 가진 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 건넬 수 있는 무던하고 너른 사랑입니다. 내 뜻과 다른 이들을 향해 "그럴 수 있지"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는, 고단한 삶과 뒤늦은 신앙이라는 바다를 건너오며 얻은 제 인생 최고의 훈장입니다.
남은 생을 향한 소망
인생의 가을날, 육신은 예전 같지 않고 주머니는 가벼워졌을지라도 제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습니다. 젊은 날의 가난과 고통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자식의 소중함도, 신앙의 달콤함도,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다짐합니다.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눈빛을 보내고, 남은 생 동안 오직 사랑만을 세상에 흘려보내겠다고 말입니다. 제 생의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배우는 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아름답게 익어갈 것입니다.


